[이동] 2004.07.03
----------------------------------------------------------------------------------------------------------------------------- Fr. 김정우
* 뇌사와 장기이식의 입법화에 따른 문제점에 대한
----------------------------------- 윤리신학적 고찰 *

4, 장기이식과 뇌사의 합법화에 따른 문제점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장기이식과 뇌사에 따른 문제점은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상정된 법률안을 살펴보면 심장사 원칙을 깨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뇌사도 사망의 한 형태로 인정하고, 현재 의료계가 자율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뇌사자의 장기적출을 합법화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의 경우 본인의 서면 동의가 없으면 가능하고, 복지부 장관의 허락을 얻으면 이식 대상자까지 지정할 수 있다. 그리고 미성년자의 장기 기증은 본인과 부모 또는 법정 대리인의 서면 동의와 함께 복지부 장관의 동의를 구한 경우에만 가족에 한해 기증할 수 있도록 했다. 뇌사자 등 사망한 사람의 장기적출은 본인이 생전에 동의하고 유족이 반대하지 않는 경우와 본인이 생전에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유족의 동의를 얻은 경우로 한정했다. 그리고 복지부는 의사의 오진이나 장기매매 등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뇌사의 판정기준을 법률에 규정하고 뇌사 판정도 복지부 장관이 지정한 의료기관으로 한정시켰다. 또 뇌사판정 기준을 고의로 위반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면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뇌사 판정을 잘못할 경우에도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도록 하는 엄한 처벌 규정을 두었다.53)
이러한 장기 이식에 관한 법률안이 상정된 후 각 언론사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사설이나 특집보도 등을 통해 신중해야 하며, 우리 나라 같이 아직 생명에 대한 존엄의식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뇌사 판정이나 장기 이식은 엄청난 사회적 윤리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54) 특히 가톨릭 의대 맹광호 교수는 "판정기준이 완벽하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실천 의지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우리의 법 존중 현실을 고려할 때 악용될 소지가 많다"고 하였다.55)
이 지적에 전적으로 찬동하며 부연하고 싶은 것은 우리 나라에 법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 생명 존중의 의식이 없는가에 대한 반문이다. 분명 낙태도 살인죄로 법전에 나와 있지만 과연 낙태에 대해 엄한 처벌을 하고 있는가? 법이 없기 때문에 인신매매와 장기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법이 없기 때문에 기업이 탈세를 하고, 부정부패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먼저 이러한 법을 제정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를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법을 제정하기 이전에 법보다는 생명존중의 의식과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56)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8월 28일자 뉴스플러스57)는 "콩팥 떼어 빚잔치하는 사람 많다"라는 충격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하는 사람들이 부도를 막기 위해서 신장을 팔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시행되고 있는 신장이식수술의 40%가 불법거래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법을 아무리 잘 만들어 놓는다 해도 법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없다면 법은 "빚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의료계의 지지를 얻으려는 여당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뇌사와 장기이식의 합법화는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시기 상조적인 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점을 윤리신학적인 차원에서 고려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나누어(의학적인 측면, 사회적인 측면, 인간적인 측면) 다음과 같이 살펴보자.
1) 의학적인 측면
의학적인 문제점으로는 먼저 의사 판정의 불확실성을 들 수 있다. 뇌사를 찬성하는 이들은 주로 2가지 측면에서 뇌사 인정을 주장하고 있다. 먼저 이미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인 뇌사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의료 행위를 계속함으로써 환자와 가족들에게 물질적 정신적 고통을 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뇌사 환자에게는 연명의료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인공호흡기의 부착 뿐 아니라 약물 치료와 수액 주입이 필요한데,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계속 같은 치료를 함으로써 환자에게 오히려 고통을 더할 뿐이며, 그 가족에게도 정신적 고통은 물론 막대한 물질적 부담을 주게 된다. 이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둘째로, 뇌사자의 장기를 다른 환자에게 이식함으로써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의학협회 역시 이같은 입장을 취해 "뇌사판정은 생명존엄성을 훼손하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 행위의 중단 또는 새로운 생명을 재창조하는 장기 공여의 경우에만 시행한다."58)고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목적으로 하는 뇌사판정이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그 판정을 하는 의사에 대해서는 일반인의 신뢰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뇌사판정은 임상소견 이외에 객관적 검사법으로 뇌파, 뇌혈류 검사, 뇌단층 촬영, 뇌유발전의 검사 등을 하지만 뇌의 깊은 곳의 상태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고 뇌 혈관이나 뇌단층 촬영으로 혈류가 없다는 것을 완전하게 측정할 수 없으며, 뇌유발전 검사도 깊은 혼수 상태와 뇌사를 구별할 수 없고, 심장사보다 판단자의 주관적 재량이 개입할 우려가 많으며 소생 가능한 환자에게 오진으로 뇌사판정을 할 우려가 있다는 의사에 대한 불신이 있다. 물론 대한의학협회는 뇌사판정에 있어서 신경과, 신경외과, 마취과 및 뇌사판정의 능력이 있는 전문의 2인과 담당의사가 함께 실시하며 장기이식에 관여하는 의사는 참여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사회의 의사에 대한 불신의 정도를 생각할 때, 그리고 영리를 목적으로 태아 성감별, 낙태, 인공수정이 무분별하게 시행되고 있는 우리 나라의 풍토를 볼 때, 실수로서의 오판이 아니라 영리를 위한 비양심적인 조작으로서의 오판은 항상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황청 과학 아카데미는 "생명의 인위적인 연장과 죽음의 정확한 순간 결정"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인간 신체의 육체적 및 정신적 기능을 조절하고 통합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의 불가역적인 상실", "뇌의 전 기능의 불가역적인 정지"가 곧 죽음의 순간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의학적 죽음의 정의를 받아들일 때 깊은 혼수 상태 때문에 나타나는 의식불명이라든가 뇌파의 정지만으로는 죽음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그 이유는 그러한 징후들이 단순히 뇌 외부의 활동과 관련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뇌의 중심적 활동이나 뇌의 구조적 기능을 담당하는 중심이 전혀 없을 때 뇌사라고 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59)
그리고 이 세미나에 참석했던 스그레치아(E. Sgreccia) 주교는 "수 시간 동안 대뇌피질의 활동뿐만 아니라 호흡이라든가 심폐기능, 신경 반사 작용 등과 같은 신체 기능과 연결된 뇌의 중심적인 활동이 불가역적으로 정지될 때 의학적으로 죽었다고 말할 수 있다."60)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뇌사판정은 이처럼 신중을 기하고 전문적인 지식과 숙련이 필요한 것이기에 오판의 가능성은 상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식에만 집중되다 보면 "빨리 장기를 얻기 위해서"라는 목적의식에서 오판은 항상 가능한 것이며, 식물인간이나 의식 결함의 중환자까지도 법적 사망자로 규정할 수 있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정부가 입법 예고한 내용에 대해서 김수환 추기경은 10인 이상 15인 이하로 되어 있는 뇌사판정 위원수를 15인 이상 20인 이하로 확대해 줄 것과 부득이한 경우 뇌사판정 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못할 경우 담당의사와 관계 전문의 2인 이상의 의견에서 2인 이상 전원 합의 의견으로 법안을 수정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61)
또한 두 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오늘날 우리 나라 의학과 의사들의 윤리성에 대한 문제이다. 의학이 존재하는 목적은 분명 인간을 위한 것이다. 즉 고통받는 이와 질병에 걸린 환자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능력과 능률의 사회 구조에 의학을 연결시켜 생각하여 사람들이 의사의 행동을 형식적인 자신의 직무 수행이나 서비스 제공으로 이해하고, 그리고 환자는 당연히 이러한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이해해 버릴 때, 더 나아가 단지 환자의 자기 원의만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기준에 따라 의사의 지식이나 권한을 요구할 때 이러한 현상은 의학의 변질을 초래할 수 있다.62)
그래서 윤리신학자 아우티에로(A. Autiero)는 의학에 대한 세 가지 범주를 제시하였다.63)
(1) 먼저 의사의 역할은 치료하고 고쳐주는 봉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는 자신의 기술로 고통받는 환자가 새로 건강을 되찾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치료도 분명한 한계가 있는데 그것은 불치병이나 죽음이라는 것이다.
(2) 두 번째 범주는 고통을 진정시켜 주는 것이다. 의사는 절망적인 상황이 예측되는 경우 자신의 기술이 한계에 도달하였음을 말해서는 안되고, 히포크라테스적인 의학과 증세의 전통에 따라 인간의 삶의 마지막 임종 순간에까지 동참하는 봉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임종시까지 고통을 덜어주고 환자를 인간적으로 보살펴주며 그 가족들을 위로해주며, 인간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적합한 인간적인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3) 세 번째 범주는 이식 의학이 관여되는 것으로 이식 의학은 치료하고 고쳐주는 첫 번째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교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식 의학이 장기의 매매나 남용으로 인해 사회 안에 치명적인 혼란 상태를 이끌어 내어서는 안되며, 인간을 존중하는 의학으로서 인간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부작용 없이 채워준다거나, 이식 의학을 통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현재 사회 안에 있는 인간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제거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식 의학은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의사는 장기기증자와 장기수여자 사이의 중재자가 되며 기증을 완성에로 이끄는 사람이다. 그래서 기증한 사람의 마지막 헌신을 완성에로 이끌어 주는 것이며, 이러한 의사의 역할은 기증자의 가족에 대한 봉사이며 가족 또한 이러한 기증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범주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 나라의 의학과 의술은 이미 인술(仁術)이 아니라 상술(商術)로 변질되어 버렸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병원마다 앞다투어 고가의 진단기계를 도입하여 돈과 힘이 있는 사람에게만 수명의 연장을 보장하고 가난하고 돈 없는 사람에게는 꿈조차 꿀 수 없는 그래서 선진 의학의 혜택이 차단되어 있는 실정에서 수많은 돈이 요구되는 장기이식 수술은 단지 소수층에게 수명연장의 의료를 제공하는 것 밖에는 다른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사실의 배경에서 의료수가가 정당하게 책정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의료보험에 적용되지 않는 고가의 시술이 더 많은 수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얄팍한 상혼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술에도 사회정의가 요구된다. 또한 장기 이식의 목적으로 이식수술 의사들과 뇌사판정자들간의 담합에 의해서도 식물인간이나 의식불명자들에 대한 뇌사판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는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오늘 우리 사회가 의사들에 대한 불신의 정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이며, 의사들의 윤리 의식 또한 그 만큼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서는 의학은 단지 수명연장을 위한 의료가 아니라 모두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그러한 예방의학이나 기초의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의학이 환자의 치료에 임하는 자세는 그의 인간성에 봉사하는 데에 있어야 할 것이며, 치유를 통하여 그의 인간적 삶에 봉사할 뿐 아니라 치유가 불가능한 경우라면 임종 때까지 가능한 인간적 삶을 최대한 누리도록 배려하고 간호하는 의술과 의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문제로는 의사들의 공명심이다. 오늘날 의학은 유전공학과 더불어 상당한 발전 단계에 들어서 있다. 그래서 인간 복제라는 충격적인 상태에까지 와 있다. 이러한 사실의 배후에는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의학자들의 호기심과 공명심이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 나라에 난립해 있는 병원들은 앞다투어 이식수술의 성공을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병원보다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선전인 동시에 병원도 경쟁이라는 논리에 발맞추어 살아 남기 위한 병원의 전략인 것이다. 또한 "어려운 이식 수술의 성공", "한국 최초의 이식수술의 성공"이라는 찬사를 받기 위한 의사들의 공명심이 여기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 특히 장기 이식 기술과 관련한 의사들의 학문적 욕구 충족 문제이다. 장기이식으로 의사 개인이나 의료기관의 이름을 높이고자 섣불리 뇌사판정을 할 때 이는 살인 행위와 다름 없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인간이 의학적 물건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이러한 공명심을 채우기 위한 부족한 장기는 결국 장기매매를 통해서 획득할 수밖에 없기에 더 많은 사회적 문제를 가져올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학문과 기술은 어디까지나 인간 존재의 생명의 존엄성과 존귀함을 드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2) 사회적인 측면
사회적 문제로 제일 먼저 언급될 수 있는 것이 장기매매이다. 뇌사와 장기이식의 문제에서 항상 언급되는 문제가 바로 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입법 예고된 법률안도 이 문제에 대한 처벌 규정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하지만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게 되면 장기이식이 증가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장기이식을 받고자 하는 환자측의 수요증가로 장기의 상품화를 초래하여 가난한 사람이 결과적으로 희생될 우려가 있고, 이로 인한 인명경시풍조가 확산될 염려가 있다. 장기매매에 대한 실례로 동아일보사와 뉴스플러스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특히 많은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은 신장인데 신장을 팔려는 사람들은 나이도 20, 30대 중반의 건강한 남성들이며 돈도 벌고 군 복무 면제도 받으려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또한 대구지역에서 1년에 행해지는 120-130여 건의 신장이식 수술 가운데 40% 정도는 불법 신장 매매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한다.
대개의 병원들은 신장매매의 가능성 때문에 원칙적으로 부모, 형제, 자매, 부부, 친척사이가 아닌 사람들간의 신장이식을 금하고 있고, 혈연관계를 입증하는 서류나 친권자의 동의가 필수적이며, 친구, 친척, 선후배의 경우에도 개별 면담을 거쳐 관계를 입증한 후에야 수술 여부를 결정하지만 일부 병원에서는 이러한 것조차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신장이식이 상업적인 차원의 매매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후진국 사회의 한 단면이며, 예를 들어 인도의 한 마을에는 주민의 1/3이 한 쪽 신장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신장 매매조직을 통해 중동 산유국 등 부유한 나라의 환자들에게 신장을 떼어 판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일본의 신장병 환자들은 동남아 국가의 병원에 입원하여 현지에서 신장을 구입해서 이식 받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신장을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국민의 독특한 정서로 볼 때 뇌사자의 신장기증이 법으로 허용된다 해도 선진국에서처럼 활성화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64)
이러한 보도를 보아서 알 듯이 아무리 법으로 규제한다 해도 우리 국민들의 법에 대한 의식은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입장에서 뇌사와 장기이식에 대한 법이 제정되면 장기매매는 더욱 더 증가할 것은 명확한 사실이며, 더 나아가 장기 획득을 위한 인신매매도 가능한 것이 우리의 한심한 실정이다. 특히 앞에서도 밝혔듯이 서구 유럽의 국가에서 장기기증이 줄어든 이유도 바로 이러한 장기매매에 원인이 있다고 볼 때 이러한 불법거래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며 더 많은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가난한 가정의 경우에 누군가가 뇌사상태에 빠졌다면 그 가족들은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더 이상 살아나라 가망성이 없는 뇌사자의 장기를 불법적으로 팔아버릴 가능성도 있으며, 더 나아가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도 간호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할 경우 뇌사자로 취급하여 장기를 팔아버릴 경우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이 뇌사의 장기이식을 합법화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를 다시 한 번 악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요인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언급될 수 있는 문제는 장기 획득과 장기 기증에 대한 문제이다.
장기이식과 연관될 때 어떻게 하면 신선한 장기를 확보하느냐에 있다. 즉 신선한 장기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성공률이 달라지므로 가능한 한 사망 시간이 많이 경과하지 않은 것일수록 좋다는 이유에서 의사는 무리수를 써서라도 고작 2주밖에 살 수 없는 뇌사자의 장기를 적출하는 것은 장기 수급자를 살리기 위해서 장기 제공자로부터 2주 이내의 남은 생명을 빼앗는 꼴이 된다. 2주 이내의 장기 제공자의 생명보다 훨씬 길지도 모르는 장기 수급자의 생명을 존중하기 때문이라면 이는 생명의 가치에서 우열을 둠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생명에서 우열을 둔다는 것은 모순으로 장기 수여자나 장기 제공자 모두는 같은 생명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적합한 장기의 출현을 기대한다. 이는 타인의 뇌사를 무의식적으로 바라는 것이며, 타인의 장기를 원하는 환자가 많기 때문에 장기이식수술을 개발된 것이 아니라 장기이식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남의 장기를 원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는 불특정 타인의 뇌사를 바라는 꼴이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죽음을 손꼽아 기다리고 나만의 삶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다리는 현상을 사회 안에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이는 사회를 죽음의 문화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장기매매에 의하여 장기이식이 이루어진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생존 중의 증여자로부터 제공받는 신장을 이식하는 문제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장기간 문제시되었다. 어떤 윤리신학자들은 그것은 절대적인 비윤리적이며 지체절단의 행위로 보아 반대하였다. 그들은 교황 비오 12세가 제시한 "개별장기는 유기체와 떨어져서는 그 본질상 아무런 의미와 목적도 없다. 그것은 유기체의 전체성에 온전히 속해 있는 것이다."65)라는 전체성의 원리를 물리적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 육체생활의 완전성을 해치도록 용인하는 전체주의적 사회개념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라는 의미이지 장기 기증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기 기증이라는 문제는 상당히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 안에는 아직도 서구 유럽의 기증 문화가 아직 형성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지 자선 단체나 종교단체를 통해 일부 이루어지고 있지만 미미한 상태이다. 외국의 경우 1978년 장기 이식에 관한 법률제정이 좌절된 독일에서는 정당을 초월하는 장기이식에 대한 법률 시안을 의회에 제출했을 때 많은 논란이 있었다. 특히 사전에 장기 기증 문제에 있어서 평소 장기 기증에 대해 아무런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을 경우나 반대의사가 없는 경우 장기 기증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법률안에 대해 가족이나 친지들이 사망자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아 장기 적출에 대한 의사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 마치 의무와 같은 것으로 여겨지고 죽음을 맞아 사망자에 대한 슬픔 가운데 장기 기증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매정한 것으로 여겨져 많은 사람들이 "장기세금", "신체의 사회학", "인간은 장기은행", "식인종"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며 반대하였다. 아울러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은66) 생전에 장기 기증의사를 표시하자는 사전 동의제를 거부하였다.67)
장기 기증에 대해 교황청 학술 아카데미는 "장기 기증은 어떠한 경우라도 기증자의 최종 의지가 존중되어야 하며, 가족이 있다면 그 가족의 동의도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68)
독일 주교단도 "어느 누구에게도 조직이나 장기 기증이 의무가 될 수 없으며, 강요되어서도 안된다. 장기 기증의 결정은 당사자만이 할 수 있다. 따라서 부모도 자녀의 장기 기증을 결정할 수 없으며, 다만 조직 기증(예: 골수기증)의 경우에만 동의할 수 있다."69)라고 하였다. 이러한 근거에 의해서 장기 기증의 완벽한 자유 동의를 보장하고 장기 매매를 엄격하게 규제하였다. 그리고 대다수의 법률은 친족간의 장기 기증만을 허락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기증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립해 볼 필요가 있다. 기증이라는 의미에는 무엇을 기대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 즉 무엇을 주면 그 보답으로 무엇을 되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교환정의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감사한다는 것도 무엇인가를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게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며 주어진 것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이동익 신부는 "기증은 자유로운 기증이어야 한다. 즉 긍정적인 의미에서 기증자의 자유가 요구된다. 기증자 자신이 이미 자신의 행위가 어떠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으면서 자유로운 동의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기증의 의미가 기꺼이 베풀어지는 선물의 반대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70)라고 정의하였다.
장기 기증에 대해서 B. Häring은 "한 장기가 전체 유기체 안에서 그 직접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또한 형제적 사랑이라는 지상적 사명을 갖고 있는 한 인격체의 일부인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절차를 거쳐서 자기 장기를 기증한다는 것은 그의 고결한 소명을 다하는 일 중 하나이다."71)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기증은 인간 육체를 단순하게 인간 자체의 존엄성과는 무관한 하나의 물건으로 취급해서는 안되며, 기증 자체로 인해 기증자가 하나의 도구나 수단으로 간주되어서도 안된다. 기증은 바로 인간의 고유한 생명까지 내어주면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의 표현이며 고귀하고 숭고한 사랑의 표현이기에 이러한 기증의 의미를 의학적인 목적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증은 전적으로 자유로와야 하며 이 자유는 본질적으로 인간적 가치를 고양시키며, 이 자유는 인간의 자아 실현을 위해서 인간에게 맡겨진 하나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72)
또한 장기 기증의 기준은 수령자가 받는 유익이 그것을 기증하는 사람이 겪게 될지 모를 상실과 위험에 상당하느냐 하는 점이다. 장기 기증에 대한 모든 정보와 지식을 알려준 후에 기증자의 동의를 받는 일이 기증을 가능하게 하고 그 기증행위가 내적가치를 가지게 되는 절대조건임이 항상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73)
이러한 기증이 원활하게 되기 위해서는 인간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아울러 기증을 생활화 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것이 교회가 오늘날 장기 이식과 뇌사문제에서 먼저 노력해야 할 점이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 안에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가치와 그리스도교적인 정신문화를 이룩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헤링(B. Häring)은 "이 일의 첫 걸음은 법 그 자체가 아니라 건전한 여론을 조성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74)
또한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를 둔 가족들에게 장기 기증을 의뢰한다는 것도 그 분위기나 상황에 따라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제도적으로 이러한 장기 기증 의사를 미리 남겨 놓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간구되어야 할 것이다.75) 아울러 장기 수급과 배분을 할 수 있는 중앙통제기구도 필요하다. 즉 장기 이식을 하려면 장기의 조직형이 이식 대상자와 맞아야 하는데 뇌사자의 경우는 불시에 발생하므로 전국적인 연락체계망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77년 장기분배기구(UNOS)가 설립되어 전국토를 통괄하는 장기 적출 및 이식 연계망을 구축해 놓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현재 정보 교환은 의사들 간의 전화통화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그 외 민간 조직으로 장기기증운동본부와 한국 기독교헌안봉사회, 한국신장협회 등이 있으나 신장과 각막 등에 집중하고 있으며 병원 측과의 정보교환도 원활하지 못한 형편이다. 그리고 뇌사 판정 및 장기 이식 병원의 자격관리 문제이다. 93년 대한의학협회가 뇌사 선언을 발표하면서 이에 관한 기준도 마련했으나 다소 허술한 측면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각 병원이 의협에 제출한 서류는 1-2쪽에 불과하며 기재내용 역시 의사의 면허번호 정도를 기재하도록 되어 있을 뿐, 경력이나 연수 교육 여부에 관한 내용이 없다. 의료장비에 관한 사항도 질에 관계없이 유무(有無)정도만을 표시하고 있을 뿐이다.76)
또한 일반적으로 획득된 장기를 누구에게 먼저 이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상당한 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여기에서도 돈 있고, 능력 있고, 힘 있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준다면 그것 또한 우리 시대의 구태를 반복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77)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오늘날 사회 복지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정신질환이나 심신장애인들의 장기 기증 문제이다. 이번 정부의 입법 예고안에 대해 김수환 추기경은 살아 있는 자로부터의 장기적출 금지 대상자에 심신장애자와 정신질환자를 추가할 것을 촉구했다.78) 일반적으로 이러한 환자들은 연고자 없이 집단 수용 시설에서 삶을 마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환자들은 자신의 의사판단 능력도 부족하며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입장을 가질 수도 없는 만큼 강압이나 제3자에 의해서 장기를 강제로 기증하거나 매매를 목적으로 적출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대한 대처도 필요하다.
3) 인간학적인 측면
뇌사와 장기 이식의 문제는 인간에 대한 문제이다. 즉 일단은 인간의 장기 이식을 위해서 생겨난 문제인 만큼, 물론 앞으로 유전공학이나 이식 기술이 발전하여 이종이식(xenograft)이 가능하여지면 모르겠지만, 이 문제는 인간의 범주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첫 번째로 제기될 수 있는 문제가 "뇌사는 인간의 죽음이다"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이다. 인간의 죽음의 문제는 단지 의학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이다. 즉 죽음의 의미에 대한 문제는 곧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이기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고대로부터 자연과학이나 의학이 아니라 종교나 철학으로부터 탐구되어 온 문제이다. 또한 경험 과학은 인간의 본질이나 인격의 모든 면모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영육이 분리될 수 없는 합일체인 인간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의학과 생물학이 인간을 그 대상으로 할 때는 필연적으로 철학과 신학과의 조우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의학에서 죽음을 문제를 삼는 것은 종교나 철학에 비해서 아주 지엽적인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의학이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단지 죽음의 시점과 원인에 대해서, 다시 말해 인간 전체가 아니라 한 인간의 신체의 죽음에 대해서만 말할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자신의 죽음 그 자체는 생물학적으로 판명되지만, 영적이며 이성적인 동물인 자신의 특성 때문에 그 죽음이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적인 존엄성을 띤 죽음이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죽음의 시간을 판단하는 일은 인간의 존엄성의 보장, 임종자의 영적, 윤리적 준비, 모든 인간관계 및 법적 정리 등과 관련되어 총체적으로 필요한 것이지 생물학적 관점에서만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79)
사실 죽음은 인간 생명의 끝이다.80) 신체적 측면에서 볼 때 생명이란 모든 기관의 기능적인 내적 작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기관의 상호 작용에도 불구하고 기관들에는 서열이 있으며 어떤 기관이 정지되었다고 해서 모두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 폐 등과 같이 기능의 순환에 있어서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작용을 하는 것만이 정지되었을 때 생명의 위협을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뇌의 완전한 비가역적 정지가 확실한 죽음의 표지"라는 주제는 단지 한 전문분야만의 일이 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객관성과 일치된 생각에 이르기 위한 윤리적인 판단과 법률적인 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 대해서 인간학적인 의미에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즉 뇌가 죽은 인간도 아직 생명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뇌사 상태에 빠진 사람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임종 중에 있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또한 뇌사로 인해 다른 기관의 기능이 즉시 정지되는 것이 아니라 뇌를 제외한 모든 기관은 피가 공급되고 또한 외부로부터 산소 공급이 되면 심장은 박동을 유지할 수 있으며 기계적인 영양 공급으로 영양을 섭취할 수 있으며 그리고 신장도 배설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부러진 뼈도 치료될 수 있으며 임신 상태도 지속될 수 있으며, 장기를 적출할 때 혈압도 상승된다는 것이다.81) 이와 같이 뇌사 상태에 빠진 사람에게는 이러한 생명의 현상들이 있으며, 이 생명의 현상은 독립된 한 기관의 생명 현상이 아니라 신체 전체에로 통합되려는 생명의 현상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론에 대해서 뇌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반론을 또한 제기한다. 이 생명은 기계적으로 연명되는 단지 식물적인 인간 생명의 남은 기간으로서 그 자체로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비가역적으로 넘어선 단계이며 단지 제한된 기간이라는 것이다.82) 그래서 이 생명은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상태가 아니며, 이 생명은 식물적인 생명의 상태가 유지될 뿐 감정이나 인식이라는 동물적인 생명의 표지나 주위 환경에 대해 반응이 상실된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행동의 충동이 억제되어 있으며, 언어적으로 표현하거나 인식하는 행동과 생각하고 반성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공간을 채워 나아가는 것이 상실된 상태이므로 인격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이 상실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혹은 포유동물의 생명이 단지 기계적으로 제한된 기간 동안만 유지될 수 있는 식물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과정을 맞이하는 인간이나 동물은 죽은 것이며 일정한 기간만 유지되는 남은 생명은 주체가 없는 것이며, 이 생명과 육체에 대한 소유를 주장할 수 있는 주체는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하는 이론으로는 신체적 통합능력의 불가역적 정지와 사회적 상호작용의 불가역적 정지라는 이론이다. 먼저, 신체적 통합기능의 정지를 죽음으로 보는 견해로서 인간의 신체적 통합기능인 뇌기능의 정지는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특성의 상실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1969년 하버드 특별위원회는 이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83)또한 비쳐(H. Beecher)는 인간의 특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 의식, 고유성, 기억, 판단, 추리, 행동, 향락, 근심 등을 들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 의식이며 이것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환경과 관계를 맺는 능력을 지닌다고 했다. 그래서 만일 한 인간에게 신체적 통합능력이 있다고 해도 의식과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능력이 불가역적으로 상실되면 인간으로서의 본질 특성을 잃은 것이므로 그 사람은 이미 죽은 것이라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84)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인간을 전체적인 면으로 보지 않고 인간을 단지 정신적인 기능에 국한시키고 있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이론에 따르자면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은 어린이나 회복이 불가능한 정신병자들과 의식의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는 환자들이 이러한 기능이 정지되어 있다고 해서 죽었다고 판단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85) 또한 임신 첫 주의 태아는 아직 뇌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며 그로 인해 주저 없이 낙태될 수 있으며, 또한 연구나 치료의 실험용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가설도 가능하게 된다.86)
그리고 여기서 뇌라고 하는 것은 전체 뇌가 아니라 뇌의 한 부분인 대뇌일 경우에는 단지 부분적인 뇌의 손상이라고 할 수 없으며, 부분적인 뇌사의 또 다른 한 형태가 뇌간의 죽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대뇌가 없이 태어난 신생아는 죽은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이러한 어린이들은 대부분 오래 살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살아있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에게서 대뇌의 상실된 기능을 뇌간이 보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87)
심하게 뇌가 손상된 경우 결코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죽어가고 있는 인간의 상태이므로 뇌사는 인간의 죽음이라는 판단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뇌사를 죽음의 판정기준으로 삼아 단지 뇌를 가진 사람만이 인간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스크레치아(E. Sgreccia) 주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실 인간 개인에게는 비록 정신적 삶이 실제적인 삶 안에서 방해받는다 하더라도 존재론적 행위만 있으며, 그것은 곧 정신적 기능까지도 활발하게 만들어 주며, 지탱해 줄 수도 있다. 따라서 인간적 생명이 존재하는 한 그는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신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생명적 기능들이 그 기능을 멈추게 될 때, 육체적 인간 생명이 끝났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영혼과 육신이 서로 분리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들의 견해로서는 뇌의 생명력으로써 인간의 생명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은 육체의 생명과 정신의 생명 사이의 이원론적 구분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88)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정신적 생명의 상실을 중시하고 육체적 생명을 천시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합치된 전체성으로 보는 교회의 입장에서도 이해될 수 없는 이원론적인 사고이다.
따라서 뇌사 판정 기준은 근본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장기를 적출해 내기 위해서 제시된 것이다." 즉 이 기준은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제시된 것으로 근본적으로는 삶과 죽음의 본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 죽음에 대한 협의를 통해 범죄적인 근거를 피하기 위한 우회적으로 정의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죽음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기준은 인체의 어느 부분이 생명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통합체로서 인격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인간생명이 아직 현존하고 있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죽음 이해가 장기이식을 위한 목적으로만 추진되고 홍보된다면 다른 생명을 살리자는 거룩한 목적의 실현보다 존재 그 자체로 목적인 한 인간이 수단화 되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 인체가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그 질서를 잃어 인간적 통합성을 상실했다고 과학의 힘으로 확신하기 전까지는 생명의 권리 뿐 아니라 그 외의 모든 인간적인 권리를 지닌 한 인격으로 대해야 하는 최대한 윤리적 의무를 우리는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89)
두 번째로 제기될 수 있는 문제가 인간의 생명에 대한 판단기준이다. 본고의 첫 부분의 문제제기에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뇌사 판정에서 생명에 대한 기준이 단지 시간적인 가치 기준으로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뇌사자는 4-5일 내에 심장사로 죽거나 길어야 2주정도 살 수 있기 때문에 뇌사자의 생명보다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이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시간으로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따지는 논리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인간 생명에 서열을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학적인 판정은 가치기준이 아닌 사실기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 사람이 제한된 시간의 의미 밖에는 더 이상 살 수 없기 때문에가 아니라 이 삶이 죽어가면서 사랑의 의미로 장기를 기증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기준에서 이식수술이 행해지고 이 기준에 의해서 후속적인 조치들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의 시간의 논리에 의한 가치 기준이라면 노인들도 젊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장기를 내어놓아야 하고, 시한부 삶을 사는 중환자 모두 이러한 가치 기준에 의해서 장기 적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의 발생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인간 생명의 시간적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선물이라는 면에서 존중되어야 하고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며, 결코 인간의 생명에 서열을 두는 그러한 논리는 결코 비상시를 제외하고는 인정될 수 없는 논리이다. 이러한 면에서 뇌사의 판단 기준은 목적을 위해 부당한 수단을 정당화시키려는 잘못된 논리의 합리화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 [Fr. 김정우] -----

53) 조선일보, 1997. 8. 5일자 참조.
54) 평화신문, 1997년 8월 17일자: 가톨릭 신문, 1997년 8월 17일자; 매일신문, 1997년 8월 5일자.
55) 평화신문, 1997년 8월 17일자.
56) 뇌사에 대한 법적 허용에 대해서
구분 완전허용 부분허용 허용불가
전체 24.6% 57.4% 18.0%
29세 이하 22.3% 63.5% 14.2%
30-39 25.6% 56.0% 18.4%
40-49 26.1% 58.9% 15.0%
50세 이상 26.3% 44.9% 28.7%
뇌사에 찬성하는 이유
구분 장기이식 의료비용 기타
전체 77.2% 12.7% 10.0%
29세 이하 80.5% 12.1% 7.3%
30-39 76.0% 10.3% 13.7%
40-49 76.2% 12.6% 11.3%
50세 이상 72.3% 19.3% 8.4%
뇌사허용에 반대하는 이유
구분 생명존중 소생가능성 생명경시
전체 47.8% 34.4% 17.8%
29세 이하 48.1% 36.5% 15.4%
30-39 50.0% 33.3% 16.7%
40-49 48.1% 29.6% 22.2%
50세 이상 44.7% 36.2% 19.1%
천주교 48.1% 25.9% 25.9%
개신교 57.5% 35.0% 7.5%
불교 58.1% 25.6% 16.3%
유교기타 25.0% 50.0% 25.0%
-서강대학교 생명문화 연구소, 생명에 대한 사회의식조사(1992) 참조.-
57) 동아일보사, 뉴스플러스, 1997년 8월 28일, 38-39면.
58) 대한의학협회지, 30권 2호 (1987), 3.
59) La Dichiarazione adottata dagli scienziati, in: L"Osservatore Romano, 31. 10. 1985, 5. 참조.
60) E. Sgreccia, Sono tre i principi che rispettai, in: Avvenire, 14 nov. 1985, 3:ID., Trapianti di cuore, aspetti etici, 96-97.
61) 가톨릭 신문, 1997년 9월 7일자.
62) K. Golser, Medizin woher-Medizin wohin, in: Bozen gehaltene Refarat 1983. 6. 16.
63) A. Autiero, Ⅱ problema dei trapianti di organo: verso una sintesi ctica, in: A. Bondolfi, R. Malacrida, A. Rohner, Ethik und Transplantation, 29-215 참조.
64) 동아일보사, 뉴스플러스, 1997년 8월 28일자, 38-39면.
65) AAS 44(1952), 779-789; AAS 48(1956), 461-462.
66)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그리스,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스페인, 스위스, 스웨덴 등이다.
67) G. Haeffner, SJ, Himtod und Organtransplantation, in: Stimmen der Zeir 12(1992.12), 816 참조.
68) L"Osservatore Romano, 31. 10. 1985. 5.
69) Erklärung der Deutschen Bischofskonferenz und des Rates der Evangelischen Kirche in Deutsshland, 1990. 8. 31, 15-16.
70) 이동익, "장기 이식의 한계에 관한 윤리신학적 고찰", [사목연구]2, 147면.
71) B. Häring, Freiin Christus Ⅲ., 116.
72) 이동익, 위의 책, 148면 참조.
73) B. Häring, 앞의 책, 116 참조.
74) B. Häring, 앞의 책, 117.
75) 실례로 운전 면허증이나 신분증 같은 데에 자신의 장기 기증에 대한 의사를 밝혀 놓을 수 있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76) 조선일보, 1994년 4월 11일자 참조.
77) 여기에 대해서 바람직한 방법은 ① 사회적인 기여도 ② 임의적 선정 방식 ③ 환자의 상태에 따른 선별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독신자보다는 4명의 자녀가 있는 어머니에게 우선권을 줄 수도 있다.
78) 가톨릭 신문, 1997년 9월 7일자.
79) 소병욱, [삶의 윤리], 성 바오로 출판사 1991, 159면 참조.
80) Ashley와 O"Rourke는 죽음의 기준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① 신체가 현재 어떠한 인간 고유의 동작도 하지 않는다.
② 미래에도 어떤 인간적 기능을 할 능력이 없을 것이다.
③ 한 인간 단위에 요구되는 기본구조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적 기능을 위한 어떠한 최소한의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B.M. Ashly,, K.D. O"Rourke, Health Care Ethics, "A Theological Analysis," The Catholic Health Association of the United States, St. Louis 1982, 365.
81) G. haeffner SJ, Hirntod und Organtransplantation, in: Stimmen der Zeit 12(1992. 12), 812; 임신 상태에서 뇌사의 경우는 특별한 것으로 생명이 유지될 수 있는 기간은 8주에서 15주까지 될 수 있다. G. Herranz, Ein Spezialfall: Der Gehirntod bei Schwangeren, in: Bonelli, Schwarz(A.6) 165 ff, bes. 184 f.
82) G. Haeffner SJ, Hirntod und Organtransplantation, in: Stimmen der Zeit 12(1992. 12), 813.
83) 김중호, [의학윤리란 무엇인가?], 93-94면 참조.
84) H. Beecher, The New Definion of Death, 4 참조.
85) 김중호, 위의 책, 94면 참조.
86) J. Wunderli는 "인간 고유의 뇌를 갖추지 못한 채 태어나는 아기들과 돌이킬 수 없는 의식불명의 상태에 있는 임종자들 역시 살아 있는 인간존재이므로 최대한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하였다. J. Wunderli, Euthanasie oder uber die Wurde des sterbens, Stuttgart 1974, 108.
87) 여기에 대해서 A. Shewnon, in: Working Group on the determination of brain death and its relationship to human death, 10-14, 12. 1989(Vatican City 1992), 41 f.
88) E. Sgreccia, Sono tre i principi che rispettati, in: Avvenire, 14 nov. 1985, 3: ID., Trapianti di cuore
89) 소병욱, 앞의 책, 150-15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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