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0. 23 // by. '山間信仰'
*보현 1리*
1) 황새골 ---- 鳳谷
① 마을개관
황새골은 영천댐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검단에서 북서쪽으로 화북면을 향해 하거천을 따라 약 4킬로
미터 정도 지나면 처음 만나는 보현 1리 4반의 마을이다. 황새골은 도로에서 하거천을 건너는 소미교를
지나서 약 70미터 정도 기룡산 자락으로 올라가서 위치한다. 이마을은 8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경주 김씨들이다.
② 제의
이 마을의 당제는 60여년전에 중단되었다. 그 후 제당은 개울가에 숲을 이루고 있었다. 여름 철에 “날만
새면 그늘 좋아서 놀았다.” 는 말과 같이 이 숲은 마을 사람들에게 훌륭한 휴식공간이었다. 여러 그루의
떡버드나무 숲속에 위치한 4그루의 소나무가 제의 장소였다. 이 숲은 보현리 중앙을 지나는 도로 복판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7년전에 경운기가 다닐 정도의 길을 확장을 하면서 배어냈다.
당시에 이 나무들을 인근 마을인 충효리의 사람이 배어서 팔았다고 한다.
그후 그사람은 벌을 받아서 ‘오래 못살았다’고 한다.
******** [제보자 : 김정표(남,61세)]
2) 배양골 ---- 背陽谷
① 마을개관
마을은 황새골과 하거천을 건너 마주하고 있으며 보현 1리 5반과 6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마을은 도로와는 약 1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위치한다. 마을이 컸을 때는 50집 정도였으나 지금은
30가구 정도로 줄어들었다. 주민이 갑자기 줄어들기 시작한 시기는 20~30년 사이라고 한다.
이들이 주로 출타한 곳은 영천, 대구, 포항 등지이다. 특히 포항제철이 건설되던 시기에 많은 사람이 이
거(移居)하였다고 한다. 현재 이 마을은 월성 김씨, 의성 김씨, 최씨, 안씨 등 각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② 제당과 제의
제당은 마을 입구에 위치하며 6그루의 느티나무 숲과 당집, 은행나무로 구성되어 있다.
느티나무는 현재 6그루가 있지만, 이전에는 매우 오래되고 굵은 느티나무를 배어냈다고 한다.
느티나무 숲 뒤편에는 당집과 은행나무 한 그루가 위치한다. 당집은 높이 145cm의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
으며, 그 안에 1칸 규모의 목재 건물에 슬레이트로 지붕을 덮은 맛배지붕의 집이 있다. 당집의 문 상단에
는 ‘여제당’(閭祭堂)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집 안에는 판자로 제단을 만들고 그위에 촛대 2개가 양쪽에 놓여 있다. 제단의 위쪽 천장부분에는 횃대
가 걸쳐져 있고, 그 곳에는 한지로 접고 타래실로 묶은 신체가 걸려져 있다.
제당의 옆에는 둘레 270cm의 큰 은행나무가 서있다. 이 은행나무는 마을 공동의 것으로 매년 그 열매를
팔아서 마을 공동기금을 사용한다. 매년 30만원~50만원 정도의 수익금이 생긴다고 한다.
3) 음지, 양지, 새마을 ----
① 마을의 개관
이 마을의 본래 명칭은 웅곡동(熊谷洞)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주변의 마을 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 모시는 제당은 가장 크고 오래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도로가 개설
되기 이전에는 음지마을의 위쪽인 기룡산 중턱으로 길이 있어서 이 지역에서 타 지역으로 향할 때는 반
드시 이 길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음지 마을의 주민의 숫자가 많을 때에는 23가구 정도였지만, 지금은 5가구뿐이다.
양지마을은 현재 14가구 정도이며, 새마을은 음지마을이 23가구 정도였을 때 2가구뿐이었으나 지금은 12
가구이다. 이것은 양지와 새마을이 도로변에 위치하며, 양지는 보현초등학교가, 새마을에는 임고농협 보
현지소가 위치하여서 보현리의 행정적인 중심지로서 변화했기 때문에 이들 마을은 음지에 비해 비교적
마을의 세력이 강한 편이다.
새마을의 성씨별 구성은 경주 김씨 2, 김해 김씨 2, 밀양 박씨 3, 성씨 1, 손씨 1, 노씨 1, 월성 이씨 2가구
이다. 양지마을의 성씨별 구성은 경주 김씨 2, 최씨 1, 권씨 1, 월성 이씨 5, 장씨1, 박씨 4이다.
음지 마을의 뒷산인 기룡산 꼭대기에는 기우제를 행하는 곳이 있다.
이곳의 기우제는 보현리 전체를 위해서 행하는 것이다. 가뭄이 심할 때는 이곳에서 불을 놓고 기우제를
행했다고 한다. 이 제의의 영험은 인근 지역에까지 널리 알려져서 매년 불을 안 놓은 적이 없다고 한다.
이 지역은 약 3년전부터 가뭄이 심각하게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기우제를 행하기 위해 면사무
소에 신고를 하였더니 미신이라고 하여 허가하지 않았다고 불평을 하고 있다.
양지마을에는 마을 입구의 도로변에 아주 오래되고 큰 당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이 나무는 느티나무로써 ‘누운 정지나무배기’(또는 ‘거동누울정자나무’)라고 부르기도 하였던 것으로 인
근 지역에서는 잘 알려져 있었던 나무였다. 그 나무의 크기는 “고목안에 2명이 들어갈 정도였다”“나무를
베어서 몇 차로 실어 날랐다”는 말을 통해서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나무는 노무 오래되어
고사하였다.
양지마을에서는 10년전부터 제의를 행하지 않았다.
그후 3년동안 50세 이전의 젊은 사람 4명이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은 지금이라도 동네 안녕을 위
해 제의를 모시라는 의견이 분분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 마을 주민의 당제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희
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주민들이 서로 제의를 행하려고 하지 않아서 당시에 구장이던 朴某氏가
혼자서 18년동안 제의를 모셨다고 한다. 그 후 그분이 돌아가신 후부터 제의를 행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
때부터 음지 마을에서 행하는 제의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제의는 삼월 초이튿날 밤에 행하였던 것이 10여년전부터 삼월 삼짇날(3.3)로 변경되었다. 초이튿날 밤에
제의를 행할 때에도 주민들이 함께 동행하였지만, 제의는 유사 혼자서 행하고 동행한 주민들은 제당 옆
에서 불을 피워두고 기다렸다고 한다. 이 당시에 유사가 되면 자신에게 좋다고 인식하는 사람도 있었지
만 주민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이러한 인식은 서서히 사라지고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유사의 책임을 맡도
록 하였다.
음력 2월 20일경 마을 회의를 개최하여 제의를 행하기 위해 제수나 유사의 적당성 여부 등 제반 준비 사
항을 결정한다. 유사는 이미 지난 해의 삼짇날 동회에서 결정되었지만, 그동안 결격 사유가 있으면 이시
기에 다시 결정한다. 유사는 제의 수행을 위한 심부름과 장보기, 제수 준비 등을 담당한다.
유사는 3월 1일에 목욕하고 왼 새끼로 금줄을 하고 황토를 뿌린다. 금줄은 당나무에 3번 감고 그곳에 한
지 전지를 접어서 끼워둔다. 이러한 절차가 끝난 후에는 빨래나 거름 등 더러운 것을 만져서도 안되며 초
상과 같은 긎은 일에 참가해서도 안 된다.
초하룻날 이러한 준비가 끝나면 유사는 영천장에서 제수 장보기를 한다. 제수는 삼실과, 돔백이 꼬지, 온
마리 생선(청어, 조기, 돔), 떡, 닭 온마리 등을 사용한다. 돼지고기나 쇠고기 등 육류는 사용하지 않는다.
떡은 주민의 숫자가 많을 때 모두 나누어 먹기 위해 쌀 1말씩 준비하였으나 지금은 3~5되만 준비한다.
제의는 삼짇날 아침 7시경 모든 주민이 참가한 가운데에서 시작한다. 이때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이 깨끗하다고 여기는 남자 어른만 참가한다. 제수는 주민들이 서로 협조하여 운반한다.
제당에 도착한 주민들은 먼저 당나무에 쳐 둔 금줄에 한지 전지를 접어서 끼운다. 주민들은 제의를 마친
후에 이 종이를 서로 가져간다고 한다. 아이들이 이 종이에 공부하면 재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종이를 가져가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제수의 진설은 할배나무 앞에만 한다.
초헌례는 마을에서 연세가 가장 많은 어른이 행하고, 아헌․삼헌례는 잔을 드리고 싶은 사람 가운데에서
결정한다. 각 헌관들은 술 두 잔씩을 따라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지를 올린다. 소지를 올릴 때 “농사가 잘되고 잘 살도록 해달라”는 말을 하면서 기원한다.
소지를 마치면 주민들은 할배나무에 술을 뿌리고 철상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제의를 마친 후 주민들은 모두 회관에 모여서 음복을 하면서 마을 회의를 개최한다.
이 때 제의의 경비를 계산하고 이듬해의 제의를 담당할 유사를 결정한다. 유사가 결정되면 마을 공동기
금에 관한 장부를 인수인계한다. 유사는 주민들 사이에서 매년 한해씩 돌아가면서 담당한다.
마을 공동 재산으로는 부동산과 공동기금 100만원 정도가 있다. 이 기금은 출향민들이 마을에 찬조한 것
이나 面체육대회에서 줄당기기에 참가하여 상금 받은 것 등을 적립해 둔 것이다. 비용은 동네 자금으로
사용한다.
부동산은 7년전까지 동답 3마지기가 본래 있었다. 당시에는 제의를 행하는 사람이 이 논을 경작하게 하
였다. 그러나 이 논을 경작할 사람이 없게 되자 매각하여 정기예금으로 예치해 두고 그 이자로써 제의의
경비에 사용한다. 부동산으로는 밭 900평도 있다. 이것은 20여년전에 이 마을에서 혼자 거주하던 한 노파
가 돌아가시면서 자신의 무덤을 벌초하고, 묘사를 지내달라는 유언과 함께 마을에 기증한 것이다.
그래서 이 밭에서 나오는 도조인 나락 2가마니로써 무덤의 벌초와 묘사 및 마을 공동기금의 일부로 사용
하였다. 그러다가 이 밭이 묵혀진 후에는 마을의 공동기금으로만 무덤을 벌초하고 묘사를 지낸다.
② 음지마을의 당제
제당은 음지마을의 논 한가운데에 있다. 당집의 크기는 260*260*155㎝이며 골기와로 이은 맛배지붕의
목조건물이며, 내부의 벽은 흙, 외부의 벽은 돌을 쌓아서 만들었다. 전체의 분위기는 고색창연함을 느낄
수 있다. 내부에는 흙으로 제단을 만들어 두고 그 위에 위패를 모셔 두었다.
제당의 뒷편에는 흙으로 둔덕을 쌓아서 둘러 놓았다.
제의의 대상신은 여신(閭神), 즉 ‘골목 거리신’이라고 한다. 대상신은 양지, 음지, 새마을 등 3개마을을
관할하는 지역신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당제는 이들 3개 마을의 주민이 돌아가면서 유사의
책임을 맡으면서 제의를 행한다. 또한 제보자의 말에 의하면 이 마을이 熊谷洞인 관계로 이 마을의 제당
은 단군을 모시는 제당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의를 행할 때 차리는 밥 3그릇은 중앙에 단군신을 위하
여, 그리고 양쪽에는 거리신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제당에는 ‘성황당신위’(城隍堂神位)라고 쓴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러한 사실을 추정해 보
건데 성황과 거리신, 그리고 단군신이 동일한 대상신으로 인식되는 듯 하다. 이러한 조사는 좀 더 신중한
조사가 요구되는 것이다.
음지마을은 5가구뿐인 관계로 다른 두 마을에 비해 제의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편이다.
“지금은 윤리기강이 해이해져서 아무도 돈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즉 주민들의 제의와 그 대상신에 대
한 이러한 인식은 더 이상 제의를 예전같이 행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제관은 귀신이 축을 준다고 하여1
년동안 상가 출입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엄격한 금기는 제의를 변화시켰다. 즉, 제관이 되면 1년동안 사
회적 활동에 상당한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약 6년전에 주민이 합동으로 제의를 행하면서 주민 모두가 출
입을 자유롭게 하자는 주민회의를 개최하였다. 즉, 주민들은 돌아가면서 유사의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제의를 주관하는 유사는 전년도 당제의 파제날 선출되거나 당해년도 음력 20일경 주민회의를 통해 선
출한다. 이 때 선출된 유사는 사흘동안 금기를 행한다. 이것을 ‘기도 드린다’고 한다. 금기는 초하룻날 찬
물에 목욕재계를 한 후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으로 시작한다. 유사는 이 날 제당의 풀을 베는 등 청소를
깨끗이 행하고,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리며 이 기간동안에는 술과 담배를 일체 할 수가 없다.
유사는 금기를 시작한 후 제수준비릉 위해 영천장으로 향한다. 이 때 유사는 상주집의 물건은 구입할 수
없다. 제수는 돔백이, 게 온마리 고기(방어), 닭 1마리, 편, 콩기름, 도라지, 고사리, 밤, 대추, 감, 배, 엿과
유과 등이 사용된다. 육류로는 닭을 온마리로 사용하지만 돼지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사용치 않는
다. 밥은 3그릇을 준비한다.
제의는 삼월 삼짇날 아침에 모든 주민이 참석한 가운데에서 행한다.
그 절차는 가정에서 행하는 기제사와 동일하게 삼헌례를 치른다. 제의를 마치면 유사와 주민들은 유사의
집에서 음복을 하면서 하루해를 보낸다. 이 때에 다음 해의 제의를 주도할 유사를 순번에 따라 결정해 둔
다. 만약 이 유사가 이듬해의 제의를 행하기 전에 유고가 생기면 이듬해 2월 20일경 다시 선출하게 된다.
제의의 경비는 유사가 장보기를 할 때 미리 경비를 지출하고, 음복할 때에 그 경비를 가구수대로 할당하
여 거출한다.
* [제보자 : 박만수(남, 72세)]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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